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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민 열사 10주기, ‘옛 인권위 바닥에 새겨진 그의 투쟁’
작성자 : 관리자(ilcenter50@hanmail.net) 작성일 : 2021-01-05 조회수 :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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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민 열사 10주기, ‘옛 인권위 바닥에 새겨진 그의 투쟁’

2021.01.05 비마이너 기사 전문_허현덕 기자

“우동민 열사, 농성자의 기본권 지켜야 한다는 상식 만들어”
“열사 뜻 이어 탈시설-자립생활 투쟁 이어가겠다” 결의

금세기빌딩 앞 인권표지석에 ‘장애인 운동가의 인권투쟁 현장 : 2011. 1. 2. 장애인활동지원 권리와 인권위 독립성 확보를 위해 우동민 열사 등이 투쟁한 곳’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진 허현덕
금세기빌딩 앞 인권표지석에 ‘장애인 운동가의 인권투쟁 현장 : 2011. 1. 2. 장애인활동지원 권리와 인권위 독립성 확보를 위해 우동민 열사 등이 투쟁한 곳’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진 허현덕

우동민 열사 10주기를 맞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옛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있던 금세기빌딩 앞에서 4일,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가 열린 금세기빌딩 앞에는 지난해 11월 우동민 열사의 투쟁이 새겨진 인권표지석이 마련됐다. 인권표지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장애인 운동가의 인권투쟁 현장 : 2011. 1. 2. 장애인활동지원 권리와 인권위 독립성 확보를 위해 우동민 열사 등이 투쟁한 곳’

장애인활동가들은 우동민 열사의 뜻을 이어, 인권과 탈시설-자립생활 투쟁에 힘을 모을 것을 결의했다. 이날 추모제에도 어김없이 우동민 열사의 어머니, 권순자 씨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1월 열리지 못했던 인권표지석 제막식과 노동가수 이혜규, 박준 씨의 추모공연도 함께 열렸다. 

명휘원에서 만난 신인기 성동장재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고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 허현덕
명휘원에서 만난 신인기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고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 허현덕

-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렇게 함께 가자’

우동민 열사는 오래전부터 자립생활을 늘 꿈꿨다. 죽기 6개월 전 쓴 ‘언젠가는’이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문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나날이 커지던 어느 날,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고 그 틈을 타서 난 생애 처음으로 집 밖으로의 첫걸음, 아니 첫 포복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탈출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발각되었고 모진 매질을 당한 후에 난 밖에 나가기를 포기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언젠가는’ 중에서)

이후 그는 25세에 명휘원이라는 직업훈련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곳에서 훗날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함께할 동지를 만나게 되고, 그때 인연을 계기로 장애인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5년간의 시설생활과 그 후 5년간의 그룹홈 생활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회에 나와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 겪었던 정립회관 비리척결 투쟁, 활동보조서비스 쟁취 투쟁. 그것도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언젠가는’ 중에서)

그에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이었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있었던 정립회관 민주화, 활동보조인제도화, 성람재단 시설비리 척결,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석암재단비리 척결 및 탈시설권리 쟁취, 장애인예산 확보, 장애등급제 폐지 등 굵직한 장애인운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을 함께했던 신인기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고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우동민 열사하고 저는 5년 동안 모든 집회를 같이 다녔고, 같이 울기도 많이 웃었고, 같이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우동민 열사가) 인권위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던 것 같은데요.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렇게 함께 가자’는 말이 아직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 인권위에서 인권의 절망을 보다

지난 2010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날 장애인활동가들은 인권위(건물 11, 12층)를 점거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절박한 사안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가짜’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저지와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퇴진이었다. 당시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용산참사나 민간인 사찰 등에도 눈감았고, 인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인권의 ‘위기’를 감지해 행동에 나섰던 장애인활동가들은 그곳에서 인권의 ‘죽음’에 맞닥뜨렸다.

인권위 투쟁에 함께했던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추모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인권위 투쟁에 함께했던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추모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인권위는 농성자인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중단했다. 활동지원사들도 끼니때만 겨우 들여보내 농성 중인 장애인들은 생활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음식 반입도 금지했다. 12월 추운 날씨에 난방도 끊었다. 점거농성하는 장애인활동가들은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동민 열사와 함께 점거농성을 이어가던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인권위에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는데, 오히려 인권을 짓밟히는 경험을 당했다”라며 “장애인활동가 동지들은 그렇지 않아도 체력이 약한데 인권위의 만행으로 더욱 건강이 악화됐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우동민 열사는 6일 폐렴으로 응급실에 긴급 이송됐다. 이후 그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23일 다시 급성 폐렴으로 입원했고, 2011년 1월 2일 치료 도중 폐렴으로 끝내 사망했다. 향년 42세였다.

문애린 공동대표는 “나와 1년 365일, 가족보다 더 많이 부대끼며 활동했던 사람이 어느 날 투쟁하다 먼저 떠났다. 매해 이맘때면 우동민 동지가 인권위의 비인권적 행위에 죽었다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돼 괴롭다”라며 “더 이상 장애인들의 헛된 죽음이 없어야 하기에 열심히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우동민 열사, 농성자의 기본권 지켜야 한다는 상식 만들어”

우동민 열사가 죽고 지난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인권위 혁신위가 꾸려졌다. 혁신위는 우동민 열사 및 장애인활동가들의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2019년 우동민 열사 8주기 추모제에는 최영애 인권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우동민 열사와 유족, 장애인활동가에게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지난해 9주기 추모제에는 현 인권위 벽면에 우동민 열사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졌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우동민 열사의 뜻이 농성자의 기본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인 상식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허현덕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우동민 열사의 뜻이 농성자의 기본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인 상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허현덕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이 과정에서 농성자의 기본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인 상식이 되었다. 농성자가 불법적인 점유나 점거를 하더라도 전기와 난방을 끊으면 안 되고, 음식물 공급과 외부와 소통을 막아서도 안 된다”라며 “장애인권활동가의 활동이 장애인인권 증진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증진한다는 투쟁의 결과”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러나 최근 고용승계 권리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에게 엘지가 전기를 끊고 음식 반입을 못 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명숙 활동가는 “언론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지난 2010년 우동민 열사 사건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권고를 했는지, 헌법상 노동권의 침해인지 확인한 후에야 엘지는 음식물과 전기 공급을 다시 했다”라며 “이번 사건에서도 인원위에 긴급구제를 요청하려 했지만, 연휴라서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사실상 인권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인권위 개선 투쟁에 더욱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우동민 열사의 어머니, 권순자 씨는 10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추모제에 참석했다. 어머니가 헌화하기 위해 꽃을 들고 있다. 그 뒤로는 금세기빌딩 앞에 놓여진 신아원 ‘긴급 탈시설’ 촉구 텐트가 세워져 있다. 텐트에는 ‘신아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개인별 지원체계 수립하라!’라는 종이팻말이 붙어 있다. 사진 허현덕
우동민 열사의 어머니, 권순자 씨는 10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추모제에 참석했다. 어머니가 헌화하기 위해 꽃을 들고 있다. 그 뒤로는 금세기빌딩 앞에 신아원 ‘긴급 탈시설’ 촉구 텐트가 세워져 있다. 텐트에는 ‘신아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개인별 지원체계 수립하라!’라는 종이팻말이 붙어 있다. 사진 허현덕

  - “우동민 열사 뜻 이어 탈시설-자립생활 투쟁 이어가겠다” 결의

우동민 열사가 투신했던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은 어떠한가. 여전히 장애인 시설수용 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에 수용정책의 처절한 실패가 드러났다.

최근 서울 송파구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원에서 거주인 114명 중 55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중 50명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확진자 5명과 음성 판정받은 59명은 시설에 남아 있다. 이에 장애계는 신아원 거주인 전원에 대한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며 지난 12월 31일부터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비단 장애인거주시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코로나19 사망자 중 35%가 요양시설 생활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수용이 얼마나 인권과 먼 것인지 보여준다.

이원교 우동민열사추모사업회 회장은 “정부는 시설 안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코호트 격리조치를 한다. 장애인과 노인은 시설 안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라며 “우동민 열사가 기본적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것처럼 코로나19 시대, 우리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경석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회장도 “장애인이 존엄하게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쟁취를 하기 위해 오늘 1월 4일, 신년 투쟁을 우동민 동지와 함께하며 2021년에도 힘차게 투쟁하자”라고 결의했다.

4일 금세기빌딩 앞에서 우동민 열사 1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텐트를 사이에 두고 거리두기를 하며 참가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4일 금세기빌딩 앞에서 우동민 열사 1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텐트를 사이에 두고 거리두기를 하며 참가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고인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박준 노동가수가 추모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고인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박준 노동가수가 추모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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